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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성경공부: 고린도전서 17강


[그리스도인과 이방인] 3.3. 선교의 자유: 충분한 동일화 (9:19-27)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고린도전서의 문예-문화적 연구] by Kenneth E. Bailey (1930~2016)


• "우리는 주변 문화와 어느 정도 보조를 맞추어야 할까?" 예: 우상 제물 문제 해결책: "우리가 얼마만큼의 지식이 있는지와 우리를 지켜보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에 의해 때로는 Yes, 때로는 No"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된 것은(9:22): "전체적 동일화" full identification 를 설명하는 바울의 입장. 모든 것(9:23) all this: 복음을 위해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려고 했던 일. 결국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는 일이다(9:19).

이제 막 시작된 고린도교회는 이교 세계 paganism, heathenism 에 둘러 싸여 살아가고 있는 상황.바울이 요구하는 것은 타인들과의 문화적 동일화와 훈련의 필요성이다. 왜? 동일화를 위해서는 엄청난 힘이 필요하므로. 경주자나 권투 선수의 훈련처럼(9:24-27)


9:19-22 는 [모든 사람 – 유대인 – {율법(유대인) - 율법이 없음(이방인)} – *약한 자 - 모든 사람]으로 구성(고리 모양)되어 있다.

바울은 ‘유대인을 얻기 위해 유대인처럼 사는 것과 이방인을 얻기 위해 이방인처럼 사는 것’에 관해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방인이 될 수는 없기에 건널 수 없는 선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삶의 방식({ }에 해당하는)에 있어서는 동일화가 가능하지만 정체성에 있어서는 아니다.

내가 속한 문화(Christian Culture)에 깊이 뿌리박고 있을 때에만 문화적 간격을 넘어 다른 편의 사람들에게 들어갈 수 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문화적 경계선을 넘기 위한 노력이라면 무엇이든 (그것이 종이 되는 것이라도) 해 보려는 바울.


9:19; 9:22b 생계를 스스로 해결함을 통한 "자유"와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는 "속박"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면 엄청난 힘이 요구된다. 이 균형의 목적은 복음을 통한 구원이다.

9:20; 9:22a 동포인 유대인들을 위해서는 회당과 성전에서 신실한 유대인으로 자신을 드러냄.그러나 이방인들에게 자신이 가진 로마 시민으로서의 지위와 특권을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약한 자"the weak가 된다. 왜?

그리스도의 성육신 incarnation 이 "약한 자"가 되는 행위였다(빌 2:6). 제자들도 약하고 가난한 자로 다니면서 자기가 섬기러 찾아다닌 사람들의 필요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눅 9:3).


우상 제물 문제도 "강한 자"가 되어서는 풀 수 없었다. 결국 "약한 자"에 대한 사랑이 문제를 해결. 약한 자를 얻는 유일한 길은 그들의 약함 속에 참여하는 것이다. 바울의 선교 방식은 이런 ‘약함’을 반영하고 있다. 미련하고 약함의 끝판왕은 예수: 비천한 탄생과 십자가에서의 죽음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공인(A.D.313 년) 이후 1,700 년 동안 서구 사회를 지배해왔던 기독교 국가들의 제국주의적 영성에 대해 자끄 엘륄은 "기독교로 세상을 정복하려는 기독교화(Christianize)의 충동"이라고 지적. 기독교화의 충동의 예는 땅밟기, 성시화 운동, 총동원 전도, 공격적 선교, 무례한 노방전도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Q. 우리는 "약한 자"로 서 있나?


9:20b; 9:21 율법(토라) 아래 있거나 율법 밖에 있다고 해서 율법을 폐기하자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서 그리스도의 마음(2:16)으로 인도함을 받는다.

바울에게는 유대인으로서의 출생, 문화, 언어, 종족과 같은 한계가 존재한다. 우리는?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이런 장벽들을 넘어서보려 하면 많은 것이 요구되고 많은 것이

위기에 처한다.

9:23-27 teamwork, 훈련, 상: 이 이미지들은 2 년마다 개최되는 Isthmian Games*에서

가져옴.

*이스트미아 제전: 고대 그리스 시대의 4 대 대회 중 하나. 개최지인 고린도 지협 a land bridge 의 이름을 따서 명명. 고린도 근처에서 2 년마다 포세이돈을 기념하기 위해 열림.

관전자와 경주자가 천막에서 숙식. 바울은 또다른 메시지의 은유를 찾아냄.

문화의 경계를 넘어 이미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복음에 우리는 참여하든지 뒤로 남아 처지든지 선택할 수 있다. 복음은 자체의 힘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우리는 통제할 수 없다. 참여할 뿐.

참여(헬라어 Sugkoinonos): 공동 참가자(팀 동료), 동업자. 실격(9:23b)되지 않고 팀의 일원으로 남아 있기 원하는 바울.

경주자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는지 잘 알고 있는 고린도인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문화의 경계선을 뛰어 넘는 일도 그와 같은 훈련을 요구한다. 권투 비유에서 주먹을 휘두르는 대상은 원수나 허공 the air 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9:27).

Q. 선교에 있어서 ‘자기를 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소명에 대한 복종. 문화의 장벽,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기 위한 헌신. 절제. 공부 등 그들이 받은 관 crown 은 금방 시들지만 한평생의 행복(돈, 직장, 세금 면제)과 미덕이 남는다.우리가 목표로 한 것은 영원한 면류관(의와 영광과 생명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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