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2 에브라임의 죄는 거짓과 포학, 앗수르와 애굽 사이의 줄타기였고,
이스라엘 족속의 죄는 속임수, 유다의 죄는 정함이 없음(방황)이다.
하나님은 각자의 행위대로 보응하신다.
12:3 ‘지금 너희의 행실과 행위는 야곱과 비교할만 하다.’라고 말씀하신다.
야곱은 형 에서의 발뒤꿈치를 잡았다. 힘으로 하나님과 겨루었다. 천사와 겨루어
이겼다(창세기 32:26). 이것은 축복에만 집착하는 태도이지 결코 ‘끈질긴 기도’가 아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스스로 왕이 되신다.’는 뜻의 이름이다.
하나님은 누구와 싸워서 이긴 결과로 왕이 되신 것이 아니다.
이런 야곱이 마침내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다(창세기 35:3).
그러니 너희도 이제 하나님을 만나야 되지 않겠느냐는 선지자의 지적이다.
하나님께 돌아오라. 인애와 정의를 지켜내라. 그리고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라라.
▣ 12:7 그러나 에브라임의 실상은 야곱 못지 않았다. 거짓 저울로 속이면서도
‘나는 부요하다, 나는 불의가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에브라임을 다시 광야의 장막에 거주하게 하실 것이다. 이미 선지자들은 말, 이상visions, 비유 등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경고해 왔다. 야곱이 하란으로 도망해서 아내를 얻기 위해 사람을 섬기고 양을 쳤던 것처럼 에브라임 역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익만을 위해서 애쓰고 있었던 것이다.
13:1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고 바알을 선택한 것이 에브라임의 죄이다.
신속하게 우상을 버려야 하지만 오히려 그들은 더 많은 우상을 세우고 있다.
우상 숭배의 결과는 이스라엘이 사라지는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역사에서 앗수르에 의한 멸망(B.C. 722년)으로 분명하게 나타났다.
◈ 13:4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은혜를 수없이 경험하고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거역했다. 이제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파괴자’가 되실 것이다.
13:10 하나님의 심판은 아무도 막을 수 없다. 왕, 지도자, 재판장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지만 이스라엘의 재앙과 위기 상황에서는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리더가 없다! 어른이 없다!
▣ 14:1 선지자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호소한다.
돌아오는 사람의 모습은 말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수송아지가 아니라 ‘입술의 열매’를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찬양, 회개). 더 이상 앗수르의 구원과 애굽의 힘을 의지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우상을 버려야 한다.
14:4 마침내 여호와의 진노가 이스라엘을 떠난다.
‘파괴자’처럼 느껴지던 하나님이 마침내 ‘이슬’처럼 이스라엘 위에 내리신다.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은 그 길로 다니거니와 그러나 죄인은 그 길에 걸려 넘어지느니라"(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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